📽 <파리대왕> & <오징어 게임> 인간이 괴물이 되는 순간

어릴 적 읽었던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분리된 ‘순수한’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잔혹한 과정을 목격하며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파리대왕>에서 느꼈던 섬뜩한 기시감과 함께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파리대왕> 표지,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 출처:amazon,netflix

<파리대왕> 문명이라는 껍데기가 벗겨질 때

<파리대왕>은 전쟁 중 무인도에 불시착한 영국 소년들이 어른들의 부재 속에 점차 야만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처음에는 질서를 만들고, 불을 피우고, 구조를 기다리던 소년들은 점차 생존과 권력이라는 원초적인 욕구 앞에서 이성을 잃어간다. 합리적인 ‘랄프’, 지혜로운 '피기'는 힘과 폭력을 숭상하는 '잭'과 그의 무리에게 밀려나고, 결국 순수했던 아이들은 서로를 사냥하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이 소설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야만성과 폭력성이 얼마나 쉽게 표출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껍데기일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오징어 게임> 시스템이 만들어낸 '무인도'

<오징어 게임>은 <파리대왕>이 제시한 질문을 현대 사회로 가져온다. 빚더미에 앉은 수많은 참가자들이 거액의 상금을 위해 죽음의 게임에 자발적으로(혹은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설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무인도'를 보여준다. 게임 규칙과 참가자들의 '자유 의지'라는 허울 아래, 그들은 인간성을 포기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 서로를 짓밟는다.

<오징어 게임> 살아남기 위해 출구로 몰려든 게임 참가자들 | 출처:netflix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스템의 역할이다. <파리대왕>의 소년들은 어른들의 부재로 인한 '무정부 상태'에서 야만성을 드러냈다면,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굴레 안에서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다. 시스템은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만, 사실상 그 선택지란 죽음 아니면 타인을 죽이는 것뿐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함은 단순히 개인의 악함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인간 본연의 폭력성을 어떻게 부추기고 극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돈이라는 목표 앞에서 윤리나 도덕은 쉽게 무너지고, 약자를 짓밟는 것이 생존의 미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질문

<파리대왕>과 <오징어 게임>은 서로 다른 배경과 시대상을 가졌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인간은 문명과 이성을 지킬 수 있을까? 혹은 우리는 언제든 폭력적인 야만성으로 회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들춰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 그 그림자를 어떻게 통제하거나 혹은 어떻게 촉발시키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오징어 게임> 이동중인 게임 참가자들 | 출처:netflix

어릴 적 <파리대왕>을 통해 충격을 받았던 나는, <오징어 게임>을 보며 그 충격이 현실의 모습과 너무나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어쩌면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오징어 게임>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진다. 두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까?